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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사회 붕괴,고대 노예제 사회까지 노예사회 시작

ΘㅅΘ 2021. 7. 5. 17:55

원시 사회에서 공동체 내에 노예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은 그때까지 착취와 억압을 알지 못했던 원시 사회 공동체 내에 그러한 관계가 도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억압의 힘은 수장에 의해서 대표된 것이다.

 

이것은 공동체의 수장과 다른 성원과의 관계를 변질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수장의 권위가 권력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권력의 물질적 기초로서, 수장이 관리를 맡고 있던 공동체의 재산이 수장의 사유재산으로 바뀌게 된다.

 

원시적 공동체의 생산관계의 붕괴는 또 다른 형태로도 진행하고 있었다. 즉 생산력의 발전이 공동체의 인구증대를 가능하게 하고 인구의 증대가 또한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오게 됨에 따라서 규모가 커진 공동체에서는, 전 사회적인 노동은 점차로 적합하지 않게 되고 공동체 내의 개개의 그룹 단위의 노동이 이것을 대체하게 된다.

 

생산노동이 이러한 단위집단으로 된 것은 원시적인 양성 관계에 점차로 갖가지 제한이 가해짐에 따라 형성된 노동력 생산의 단위 집단, 즉 다시 말해서 가족이었다. 가족에 의한 개별적 경영이 발전하여 감에 따라서 생산수단과 생산물도 개개의 가족의 사적소유로 진화하여 갔다.

 

이러한 사적 소유의 고정화가 공동체를 내부로부터 붕괴시킨 것이다. 그러한 내부 붕괴를 막기 위해서 공동체는 그 관리기구를 강화하고 각 가족에 대한 이 관리기구의 강제력을 증대시켜 갔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기구를 대표하는 것이 앞에서 말한 수장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모순을 내포하면서 공동체의 내부 붕괴가 한츰 심각하게 진행되어 가는 것을 피하기 어려웠다.

 

빈부의 차가 공동체 내부에서 발생, 심화되고 함편에서는 수장을 비롯한 소수의 가족에 의한 공동체 공유지의 횡령, 다른 편에서는 몰락해서 노예로 된 가족의 출현이라는 과정이 진행되어 갔다. 그 강제력이 강화된 공동체의 관리기구는, 공동체의 분열을 저지나 완화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심화시켰다. 이렇게 하여 국가가 출현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사회의 분열, 착취와 억압의 출현은 나아가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예속을 의미하게 되었다. 원시 공동체 속에는 성과 연령의 구별에 기초한 자연 발생적인 분업은 존재하였지만, 그것이 어떤 사회적 차별을 수반하는 일은 없었고 남녀의 사회적 지위는 평등했다. 결혼 형태는 집단적이었고 공동체가 노동생산성의 단위였기 때문에, 공동체의 인간관계는 모계를 중심으로 하여 성립되었다.

 

더구나, 가사와 육아 같은 일이 중요한 사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점하고 있기조차 했다. 그러나 공동체의 가족으로의 분해, 가족에 의한 사적 소유의 출현은 이러한 원시적인 남녀 간의 평등을 붕괴시켰다. 목축, 농업, 수공업 등 당시의 주요한 노동이 주로 남성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 여성의 분담이었던 가사와 육아가 사회적인 성격을 잃음과 동시에 그 지위가 저하된 것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 가족 속에서의 남성의 지도권을 강화시켰다.

 

또한 이 가족에 의한 사적 소유의 발달은 남성이 그의 관리 밑에 있는 재산을 자신의 확실한 자식에게 상속시키기 위해서 여성에게 일방적인 일부제를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남성에 대한 여성의 예속을 정착시키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원시공산제 사회는 붕괴했고 그 대신에 분열된 최초의 사회인 고대 노예제 사회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고대 노예제 사회는 확실히 석기로 대표되는 낮은 생산력에 규제된 원시사회의 여러 가지 협소함을 타파하고 철기의 출현으로 대표되는 생산력의 새로운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사회관계를 만들어낸 사회적 진보였다. 그리도 진보는 사회발전의 장점과 동시에 원시인이 미처 알지 못했던 사리사욕, 증오, 질투, 폭력 등으로 채색되면서 진행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