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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의 사회 노동생활과 노예 발생의 시점

ΘㅅΘ 2021. 7. 5. 19:00

원시적인 노동의 조직 그것이 원시인의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주요한 노동 수단은 석기이다. 따라서 생산력은 극히 낮았다. 원시인 집단은 주로 토지와 산림을 공동으로 점유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서로 힘을 합해서 일했다. 그렇게 일해야만 그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상태에서의 어떠한 불평등한 인간관계도 끼여들 수 없었다. 남녀의 불평등도 없었으며 사회경제적 지배의 구별도 없었으니 불평등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불평등이라는 것은 타인의 잉여 노동가치를 빼앗아야만 존재하는 것이지만, 빼앗아 가질만한 여분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노동이 필요노동이고 잉여 노동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이 원시 공산제의 생산관계이다. 불평등이 없는 이상, 억압도 없고 따라서 억압의 국가도 존재하지 않았다. 집단에는 지도자가 있어서 높은 권위를 지녔고 사람들은 그 권위 앞에서 복종했지만, 그것은 권력이 아니었고 지배와 복종의 관계도 아니었다. 집단 전체의 이익과 대립하는 어떠한 개인도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도자의 지위는 고정된 것이 아니고 필요에 따라서 재선출되었다.

 

원시적인 공산제 위에 입각한 이러한 공동체는 그 자체가 노동 생산력의 단위이기도 했고, 공동체 전체와 구별되는 가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혈연에 의해서 결합된 불과 수십 인 정도의 소집단이었으며 이러한 공동체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광대한 자연 속에서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들 공동체는 그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서 완결된 경제단위였고 각 공동체를 포괄하는 경제관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각 공동체가 각각 독립된 사회였고 한 공동체의 사람들은 다른 공동체의 사람에 대해서 무관심했으며 교섭도 없었다.

 

토지를 둘러싸고 공동체 상호간의 이익이 충동할 때에는 공동체의 사람들은 다른 공동체의 사람들에 대해서 자연환경 일반에 대해서와 똑같은 태도를 취했다. 즉 쫓아버리고 만족하기도 하고 죽여서 식량으로 삼기도 했다. 식인종이라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동체의 사람들에게는 공동체가 전부이고 공동체를 넘어선 인류라는 관념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잉여농산물을 남길수 없었던 낮은 생산력 아래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완만하기는 했지만 사회의 생산력은 확실히 성장하여 갔다. 생산기술이 사회적으로 축적되어 갔기 때문이다. 이윽고 금속기구의 출현에 따른 노동 수단의 개선, 목축과 농업의 형성과 발전은 식량 축적기술의 진보와 더불어 드디어 잉여농산물을 공동체에 항상적으로 보장할 수 있게까지 되었다. 이것은 원시사회의 상태에 커다란 변화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로, 잉여 농산물의 출현은 공동체를 위해서 그것을 관리하는 수장의 권한을 두드러지게 강화시키고 그 지위에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각 공동체가 놓여있는 자연조건은 동일하지 않았고 따라서 잉여생산물의 종류도 동일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공동체가 접촉하게 되었을 때 서로의 잉여생산물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잉여생산물의 이러한 교환은 우연적, 일시적인 것으로부터 점차로 항상적인 것, 그것없이는 살 수 없는 것으로 되어 갔으며 그 관리는 수장이 맡게 되었다.

 

둘째, 잉여생산물을 가져올 정도로 노동 생산성이 높아진 것은,타인의 잉여 노동을 획득할 가능성이 출현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능성은 우선 토지의 점유를 둘러싼 충돌의 경우에 이제까지는 동물처럼 쫓아내 버리거나 먹어버렸던 다른 공동체의 성원을 먹는 대신에 가축처럼 사역한다는 형태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노예 발생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노예의 관리를 맡았던 사람 또한 수장이었다. 원시적 공동체의 생산관계의 붕괴는 공동체의 인구를 늘렸고, 인구수가 늘어남에 따라서 생산력이 높아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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