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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사회 붕괴, 가내수공업의 시작 자본주의 발단

ΘㅅΘ 2021. 7. 3. 17:10

봉건사회 경제와 그것에 따른 폐쇄성을 타파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것 그것은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상업의 발전이었다. 생산력의 발전은 노동 용구의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수공업의 발달, 각 지역에서의 농업생산물의 다양화로서 나타났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그를 생산물의 교환, 판매를 위한 상업활동의 발달을 촉진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상업이 발달하게 되자, 그것에 따라서 수공업 생산의 방식도 종래의 주문생산으로부터 판매를 위한 생산, 즉 상품 생산으로 변화하였다.

 

농민도 농노 내지 예농 상태로부터의 해방을 원했으며 그 잉여생산물을 시장에서 자유롭게 판매할 권리를 영주에게 요구하게 되었다. 봉건영주들은 한편으로는 봉건경제의 경제적 기초를 파고 들어가는 상품경제의 이러한 전개를 백안시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의 욕망 때문에 이것에 추파를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영주들은 점차로 농민들로부터 화폐지대를 요구하게 었다. 농민 또한 소상품 생산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상인이 사회의 실력자로서 활약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봉건영주의 명을 받아서 봉건영주가 수취한 생산물 지대를 화폐로 바꾸는 일을 청부 맡고 있던, 대상인은 이윽고 사치스러운 낭비 등으로 말미암은 봉건영주의 재정난을 이용해서 돈을 빌려주고 그 재정을 지배하게 되었다.

 

한편 소상품 생산자의 길로 들어선 농민과 수공업자 중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두드러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빈곤하게 된 사람은 상인에게 빚을 꾸고 그 대신 에 싼 가격으로 생산물을 상인에게 양도할 것을 약정하여 상인에 대한 종속을 심화시켜갔다. 마침내 부유한 상인은 몰락한 수공업가에게 원료와 노동용구를 공급해서 일을 시키고, 이들에게 품삯만을 지불하고 제품을 자신이 가지게 되었다.

 

빈곤해진 농민과 그 가족도 눈앞의 가계 유지를 위한 부 업으로서 동일한 일에 종사하게 되었다. 이러한 방식을 자본제 가내수공업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상인은 사실상의 산업자본가로 되고 몰락한 수공업자, 빈곤한 농민과 그 가족은 사실상의 임노동자로 된 것이다.

 

봉건사회의 내부에서 이렇게 해서 발생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점점 성장하여 갔다. 우선, 노동자가 하나의 작업장에 모여서 동일한 작업을 하게 되었다. 자본제 경영이라고 불리는 이 단계에서는 아직 단순한 협업에 의한 노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 다음에는 거기에 분업이 도입되게 되었다.

 

이것은 매뉴팩처(공장제 수공업)라고 불리며, 오로지 개인적으로 실시되었던 종래의 수공업 생산에 비해서 상당히 생산성이 높았다. 따라서 이것은 종래의 수공업자 사이의 경쟁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층을 금세 몰아내고, 몰락시키게 되었다. 상품생산의 이러한 발전은 필연적으로 그들의 상품의 판로를 더욱 확대하여 갈 것, 전국적인 규모로까지 확대하 여 갈 것을 요구했다.

 

그 장해물로 작용한 것은 각 지역의 봉건영주가 각각 별개의 권력을 가지고 각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이러한 상태를 타파하는 것이 중간 신분으로서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해 온 신흥 자본가들의 요구로 되었다.

 

한편, 봉건영주 측에도 권력의 분산상태를 극복해서 하나의 중앙집권적인 국가 권력을 완성시킬 필요가 생겼다. 왜냐하면 각지의 농촌이 점차로 전국적인 상품 유통에 의해서 연결되어 간 결과, 이제까지 개별적으로 투쟁하고 있던 농 민봉기가 점차로 그 고립성,분산성을 극복하고 한 지방에 서의 봉기가 점차로 주변으로 파급되는 식으로 전 지방적인 혹은 전국적인 규모로 조차 일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 상품경제가 여기까지 발전해 온 상태에서는 자기 자신을 중앙 집권화하여 농업뿐만 아니라 상공업에서도 권력의 기반을 구하지 않는 한, 재정적으로도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성립된 것이 절대 왕정이라고 불리는 국가 형태이다.

 

신격화된 군주가 절대 무제한적인 권력을 한 손에 쥐고, 그 말단에까지 정비된 관료기구, 상비군, 경찰, 재판소, 징세 조직을 가지고 민중을 강제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는 봉건적인 권력이지만, 동시에 그 밑에서 자본주의적인 생산관계를 육성해 갔다는 역사적, 객관적인 역할을 짊어진 것이었다.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가 육성된 뒤인 절대왕정 시대에 일어난 중대한 사건은 자본의 본원적 축적(원시적 축적)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원래 자본주의적 생산이 전면적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1. 생산수 단과 생활 수단으로부터 분리되고 인신적으로는 자유로운 다량의 노동력이 존재할 것
  2. 자본으로 사용될 수 있는 다 량의 화폐가 소수자의 손에 축적되어 있을 것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란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한 이 두 가지의 전제 조건이 국가 권력의 손을 빌어 일거에 폭력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첫째 조건은 다양한 방식으로 농민을 토지로부터 분리시켜서 거대한 부랑자 집단으로 만드는 것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모직물 제조 메뉴팩처의 발전에 의해서 증대된 양모의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 쉴 새 없이 농지가 목초지로 바뀌어 무수한 농민이 거리로 내몰린 것과 같은 식이었다.

 

두번째 조건은 불법적인 각종 중세, 전매제도, 해적을 능가하는 식민지 약 탈, 상업 전쟁, 흑인 사냥과 노예무역 등에 의해서 수행되었다. 이것들은 피에 물들고 불에 타는 문자로 인류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이다. 여기에 자본주의 탄생의 비 밀이 있다. 자본은 머리부터 발톱 끝까지, 온몸의 털구멍 이란 털구멍으로부터 피와 오물을 뚝뚝 흘리게 하면서 이 세상에 탄생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절대 왕제 아래에서 힘을 축적한 자본가들의 다음과제로 된 것은 자신의 손으로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절대왕정은 이미 그들에게는 장해물이 된 것이었다. 고조되어가는 농민의 투쟁을 이용하면서, 그들이 지 도권을 장악해서 절대왕정을 타도하고 그들의 정치 지배를 수립한 것이 것이 시민혁명이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한 일체의 장애물이 제거된 곳에서 일어난 것이 산업혁명이었다. 이것에 의해서 공업의 기술적인 기초는 도구로부터 기계로 변화되었고, 기계제 대공업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지배적인 형태로 되는 새로운 시대의 막이 올라 자본주의 경제의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되게 되었다.